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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 우리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하는 존재로, 소위 현인 (Home Sapiens) 이라고 불리는 인간이다. 신 (God) 이 창조하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피조물 (creatures) 중에서 가장 현명한 존재로서 모든 존재 중 으뜸이라고 자부한다. 동식물 모두를 포함한 삼각형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자리매김되어있는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더구나 동물 중에서도 인간만은 종족특유의 특성인 언어능력을 타고났다. 인간은 입인 (立人, homo erectus) 이 되면서 성대가 하강되어 다양한 소리 (sound) 를 낼 수 있게 되었고, 또 현인 (賢人, homo sapiens) 이 되어 두개골의 용적 (cranial capacity) 이 커지면서 소리라는 그릇에 의미 (meaning) 라는 내용을 담아서 언어 (language) 라는 인간 종족 특유의 도구 (human species specific instrument) 를 창출해낸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망라하여 언어라는 루비콘 (the Rubicon) 강을 건넌 것은 오직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들은 겸손 (humbleness) 이라는 미덕 (virtue) 이 부족하다. 어떤 작가는 '자기가 신 (God) 이었다면 창조하지 않았을 존재가 바로 인간' 이라며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는 존재 (human being) 를 알 수 없는 묘한 존재라고 고백했다. 백 년을 살기가 힘든 유한한 존재 (limited fatal being) 인데 영원히 죽지 않을 존재인 것처럼 겸손하지 않고,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수시로 마음이 변하는가 하면, 남 욕하는 것이 자기를 욕하는 것인데 이 단순한 사실을 모른 채 남의 말 하기 (gossiping) 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필자는 그 많은 인간의 문제 중에서도 감사하는 마음 (thanks-giving mind) 이 결여된 것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인간은 참으로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사실 엄청나게 감사한 일 이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엄청난 기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건강하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병상에 누어서 투병하는 많은 환자들을 생각할 때 그렇다. 사지 (두팔-두다리) 가 멀쩡하다는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다. 지체가 불편한 지체 부자유한 불운 (unlucky) 한 분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에 그렇다. 암 (cancer) 과 싸우다 이겨낸 사람들은 덤으로 사는 인생에 주체할 줄 모르는 감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나 아무런 병을 모르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더 행복한 분들은 미련하게도 감사할 줄을 모른다. 학생들은 부모들에게 감사할 줄을 모른다. 부모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나게 하여주고, 안전하게 길러주며, 힘들게 일하여 먹여주고, 재워주며, 공부시켜준다. 이런 엄청난 축복은 온데 간데 없고 마치 당연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어떤 경우는 '왜 저를 이렇게 못 생기게 낳으셨나요?' '왜 저를 대학에 보내시나요?' 마치 부모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들이 존재하여주고 또 공부하여주는 것 같은 엄청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부모님들이 늘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라 (Please say 'thanks' a lot) 며 교육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캐나다에서도 'thanks' 라는 말은 마치 입 버릇처럼 흔하다.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옛말에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는 말씀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찬송가 중 지체장애자가 작사한 아름다운 찬송이 있다.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이 찬송가는 지체부자유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알게 된 사실에 감사하는 내용이다. 남이 보는 것 못 보고, 남이 듣는 것 들을 수 없어도, 나는 남이 가지지 않은 것 있으니, 하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행복하다는 내용이다. 숨 (breath) 이 막히면 3분도 못 가서 죽고 마는 그야말로 나약한 (fragile) 유리동물 (glass menagerie) 에 다름아닌 것이 우리들 인간이라는 자화상이다. 그러니 숨 쉰다는 자체가 살아있는 것이며 이 엄청난 사실이 축복 (blessing) 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면 매 순간 (every moment) 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과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매 순간마다 계속 숨쉬며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우리는 비행기 사고를 가끔 속보 (breaking news) 로 전해 듣는다. 대개는 이륙과 착륙이 사고의 분수령이다. 수 백 명의 승객과 엄청나게 무거운 화물을 탑재한 채 비행기라는 엄청난 동체가 멋지게 이륙에 성공할 때, 그리고 오랜 시간을 무사히 날라서 가볍게 착륙할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장 (captain) 에게 감사하다는 박수를 보내는가? 감사에 인색한 것은 비단 이런 큰 예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소위 무한재 (unlimited substance) 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것이 그 예이다. 물이 없다면, 공기가 없다면, 집이 없다면, 먹을 것이 없다면, 건강이 없다면, 부모가 없다면, 친구가 없다면, 과연 나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화장실에 가면 물을 아껴 쓰세요 (Conserve water!) 라는 문구가 붙여있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저 예사로 보아 넘기기 일수이다. 물이 오염되어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는 게 얼마나 많은가? 공기가 없이는커녕 공기가 신선하지 않은 경우 숨쉬기가 힘들다. 특히 달리기를 하는 중에 매연과 같은 오염된 공기를 호흡한다면 더 이상 달리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부모의 덕분에 자녀들은 좋은 집에서 산다. 공부방도 있고 책상도 걸상도 있다. 좋은 화장실도 있고 컴퓨터와 TV등 수 많은 문명의 이익 속에 살아간다. 자녀들이 집 없는 동료 (homeless friends) 들을 얼마나 생각해 보았을까? 한국에 10여 년 전 소위 IMF위기라고 불리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 그 당시에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당하여 화장실도 없는 셋방에 살아 주변의 역전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며 생활한 얘기를 무용담처럼 하기도 한다. 내 일이 아니었으니 그저 그렇게 어려웠었구나! 에 그치기 일수이다. 자녀들은 편하게 기거하는 집과 일용할 음식과 자기의 건강에 대한 감사를 하지도 또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더구나 부모님에 대한 감사는 형식적이기 쉽다. 부모님께서 안 계시다고 생각할 때 우리 자녀들은 누가 공부시켜주며 누가 돌보아주는가? 그런데 어떤 경우 자녀들은 부모를 미워하고 차별한다고 서운해하고 공부하라는 충고를 자신을 안 믿는다 혹은 잔소리한다고 치부하기 일수이다. 감사를 몰라도 정말 모르는 경우이다. 부모님이 아니면 충고할 사람도 소위 잔소리할 사람도 없다. 관심과 사랑이 없이 어떻게 조건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주고 잔소리하고 그러겠는가? 1+1=2 정도의 수학 등식만큼이나 쉬운 사실을 놓고 자녀들은 부모를 따르지 않고 듣기 싫어하고 귀찮아 한다. 세월이 가서 나중에 후회할 엄연한 현실을 놓고 감사대신 서운함이 마음 속에 가득하기 쉽다. 우리 학생들은 자기의 주변을 잘 생각해서 현재 자신이 가진 행복을 감사할 줄 알기를 바란다. 자신이 숨쉬며 존재하고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자매가 있으며 학교가 있고 선생님이 있고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있는 모든 것을 엄청난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기 바란다. 그럴 때 자신의 소중함을 알며, 지신의 임무를 알게 되고, 그래서 공부를 하고 싶고 (I will study),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I shall study),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I can study), 아름다운 연쇄적 결론이 (consecutive conclusion) 도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