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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와 한국인들의 신경질적 반응 매년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한다. 그 일환으로 이번에는 한국에만 1개월을 다녀왔다. 한국은 참으로 많이 발전했다. 거리도 깨끗해지고 교통질서도 좋아지고 공기의 질도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젠 국민적 자부심도 만만하지 않다.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이젠 당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무언가 걱정되는 구석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보려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한국인의 지나친 감정적 반응이다. 정치적 문제와 만나면 거의 신경질적 반응 (hysterical reaction)으로 바뀐다. 한국인들은 나라가 좋아졌어도 좋아진 현실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대통령이 나라를 망쳤다고 불평한다. 불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하다. 마치 도둑놈한테 욕 하듯 한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내가 싫어서 안 찍었어도 직선제 투표 (referendum)를 통하여 당선되었으면 따르고 협조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이치이다. 국회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에서 멱살잡고 반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반 독재 투쟁을 하느라고 그랬으려니 했다. 그런데 민주화된 지금도 여전하다. 야당은 반대만하고, 여당은 서투르고, 국민들은 협조를 안하고, 정치적 이유로 정당과 정치인들은 합당과 분당을 밥 먹듯이 소위 합종연횡(合縱聯橫)에 정신을 못 차린다. 이것 또한 거의 신경질적인 수준이다. 한국인들은 대통령선거철을 맞아 소위 '요동치는 대선정국' 이라는 신문 제목이 시사하듯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 그런데 어떤 변수도 안 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 정부가 워낙 인기가 없다 보니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이유도 있고, 어느 누구도 대통령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데도 이유가 있다.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도대체 기절할 정도로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 무조건 지역으로 나뉘어 투표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무조건 어떤 사람이다. 별별 험이 많아도 무조건 찍을 태세이고, 만약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헐뜯으면 사생결투를 하듯 싸우려 덤빈다. 그래서 술에 취한 채 서로 피가 터지게 싸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렀다는 보도도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다른 사람의 주장을 그런 면이 있다고 인정하는 일은 결코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신앙적 수준 (religious level)으로 신뢰한다. 한국민들은 한풀이에 열광한다. 그래서 6.25 전쟁 중에도 좌우 (left and right wings)가 서로가 고자질하고 죽였다. 민족의 비극은 일본식민지 시대에도 똑 같았다. 서로가 친일파니 민족주의자니 하여 갈등하고 감정적으로 괴롭혔다. 그러나 일제치하 (Korea under Japan Empire)에서 민족을 괴롭혔던 친일파도 청산하지 못했고, 독재정권시절 국민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단죄하지 못했다. 광주사태 때 수고했다고 훈장을 탄 사람들이 있다. 물론 5공화국의 실세들이다. 그러나 광주시민 학살을 지시했던 사람들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히 잘 살고 있다. 사극을 통해서 옛 역사가 피로 얼룩진 한풀이 역사였음을 너무나 잘아는 국민들이라 그럴까? 굿거리 문화, 한풀이 문화를 즐기는 듯 하다. 그래서 교육도 한풀이 하듯 한다. 부모들의 한(恨) 을 자녀들의 교육을 통하여 이뤄보려는 면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에는 대통령선거가 곧 있다. 그런데 걱정되는 구석이 있다. 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는데 주요 후보들의 문제점이 만만하지 않은 모양이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후보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철학으로 볼 때, 대통령이 되기에는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직도 한국에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미국을 향한 사대적 사고도 만만하지 않다. 이미 인기나 효력이 상실된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이 노력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의 정당들이 정치 철학으로 뭉쳐지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한 정당에 너무 다른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기에 그렇다. 더구나 한국의 정당들은 색갈이 없다. 진정한 보수가 없고 진정한 진보도 없다. 반공만 외치면 보수인 줄 착각하고, 노동자만 부추기면 진보인 줄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래서 말 좋게 그리고 양쪽의 표를 의식해서 자기들은 중도개혁 (moderate liberal) 이라고 내세우기 일 수이다. 국민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통령 후보들과 운명을 같이한다. 문제점도 옹호하고 감정도 이입 (移入)한다. 이것 또한 신경질 적 수준이다. 누가 어떤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지, 지구상 유일한 분단 국가이면서도 누가 어떤 통일관을 갖고 있는지, 누가 얼마나 세계화된 시대에 영어에 자유로우며 국제적 협상력을 갖고 있는지, 누가 얼마나 모든 계층의 국민들의 고충을 균형 있게 보살필 수 있는지, 누가 과연 역사만 바로 보고 깨끗하게 한국의 장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는지, 누가 과연 국민의 복지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최소한 한 나라의 대통령은 깨끗한 도덕성으로,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시대적 요구사항인 통일을 일구어 내며, 냉철한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 그리고 확고한 추진력으로 한국의 미래사를 일궈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신경질적으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후보들을 배척할 때, 과연 얼마나 훌륭한 분이 한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될지 걱정되는 바가 크게 된다. 좀 예민한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국민들은 8년 전 George Bush를 대통령으로 뽑고 경제의 곤두박질침을 경험해야 했다. 합당하지 않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전쟁으로 재임기간 내내 막대한 전비를 지출했음은 물론, 모두가 부러워 하던 미국의 이미지는 한량없이 실추되었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이 끝을 내라고 재선까지 밀어줬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다. 지도자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온 국민의 문제이고, 특히 미국 같이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경우 대통령에 따라서 국제적인 갈등이 생겨난다.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미치는 영향은 비단 이런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어른들의 언어와 행동, 그리고 그들의 반응은 어린 자녀들의 판단력과 사고력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른들의 일거수일투족 (every single verbal and nonverbal behavior)은 어린이들에게 거울이 되어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선거에 임하는 어른들의 감정적 반응, 신경질적 대응은 어린 자녀들에게 나쁜 감정적 대응을 교육하게 된다. 감정으로 이기는 일은 없다. 무슨 일이든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이를 바탕으로 행동에 옮길 때, 멋진 사회가 연출될 수 있을 것이다. 선동이나 하고, 허위 공약이나 하고, 거짓말이나 하고, 인기발언이나 하는 후보들을 축출하는 주체는 다름아닌 국민들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는 국민들의 수준에 때라서 그 나라의 대통령이 나오게 되어있다. 일찍이 미국의 건설자 Ralph Waldo Emerson은 '절대적 신 (Absolute God)이 창조한 자연(Nature)은 절대 질서 (Absolute Order)이며, 이 절대 질서인 자연법 (Natural Law)를 따르는 인간 (Man)의 사회는 고상한 사회 (High Society)' 라고 주장했다. 우리 한국에 절대적 질서를 따르는 대통령, 그래서 상식이 통하는 고상한 사회를 창출해내는 대통령, 통일을 일구어 내는 대통령이 나와서, 온 세계에 소위 당당하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어 냈으면 한다. 이러기 위해서 국민들은 신경질적 반응을 거두고, 객관적이고 이성적 판단으로 훌륭한 대통령을 선출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