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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교육 (Society & Education) 조주연 – 퀸즈칼리지 교장, 문학박사 (사회언어학)
교육이 가정이나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삼척동자 (三尺童子) 도 알만한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자녀들에게 주는 교육이 정말로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똑 같이 일어나는 진행형의 실상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Field Trip을 제공한다. 자연은 살아있는 교과서이기에 그렇다. 이와 매한가지로 우리의 주변과 사회도 자녀들에게는 살아있는 교과서일 따름이다. 실존하는 예(example)가 바로 사회적 현상들이기에 그렇다.
이라크의 전쟁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가 악의 축으로 꼽혔던 Sadam Hussein의 손에 있다는 결론에 따른 부득이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미국은 국제연합의 승낙도 없이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 이라크를 침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많은 순수한 민간인들과 아녀자들 그리고 미국과 다른 참전국의 병사들의 인명을 앗아간 이 전쟁의 명분은 모두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그런데도 철군을 가지고 논란도 많지만 전쟁결정의 장본인인 미국의 현재 대통령은 조금도 반성을 안하고 있다. 미국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참으로 민망한 일이 될 것이다.
캐나다에서도 가끔 어린이 납치가 일어난다. 총기가 허락되지 않은 나라이지만 젊은 이들에 의한 총기사고가 또한 일어난다. 율법을 어겼다고 고등학생 딸을 처참하게 처형하기도 하고 집에서 몰래 마약을 제조하기도 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사회적 병폐와 사회의 암적 요인은 예기하지 않은 학교에서도,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일어난다. 모두가 옷깃을 여미고 자녀들을 생각하고, 학생들을 생각하고, 성장하는 젊은 이들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
한국에서는 요즘 대통령의 직권남용이 문제인 것 같다. 대통령이 됐다고 모든 권한을 받은 양 미국대통령을 만나서 흔쾌히 30개월 된 소고기까지 문제없다 (No Problem) 고 통 크게 결정하는 바람에 어린 학생들이 매일 청계천에서 촛불시위를 한다고 들었다. 더구나 반성도 않는 일본을 향하여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대통령이 사사로운 너그러운 감정과 국민의 불편한 감정을 아마 혼동하고 있는 듯 하다. 무조건 신도시 (New Town) 을 세우겠다고 외쳐서 국회의원만 되고 보자는 발상과 다를 것이 없는 무책임한 언행 (irresponsible verbal behavior) 인 것이다. 학생들이 가장 배우고자 하는 분들의 행동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역시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예로 여겨진다.
이민을 와서 살다 보면 한국에서의 가정적 상황과는 사뭇 다른 면들이 있게 된다. 특히 남편들에게는 힘든 상황들이 나타난다. 남편들의 역할이 한국에서와 달라서 그럴까? 많은 가정들이 시끄러워지기도 하고, 자녀들이 엄마와만 상의하기도 하고, 존경 받아야 할 남편들의 권위와 위상은 사뭇 추락한다. 자녀들은 자기를 교육시키기 위해 희생적으로 이민 온 부모를 쉽게 보기도 한다. 언어적인 문제에서 비롯될까? 아니면 캐나다의 인권에 관한 관습이 달라서일까? 기러기 부부로 떨어져서 자녀들만을 보살피는 엄마들도 자녀들로부터 고약한 경우들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육적으로 아주 문제라고 여겨진다. 엄마의 지난친 자식사랑이, 캐나다에서의 지난친 자녀의 자유가 위 아래도 없고 법도도 없는 그래서 부모자식 및 부부관계도 무너지는 비교육적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정은 작은 사회이고 자녀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살아있는 학교이다. 어른들의 사려 깊은 언행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오스트리아는 아름다운 환경을 자랑한다. 그래서 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비엔나의 언덕에 올라가 보니 올라가는 길 자체가 왈츠가 나올만한 낭만적인 분위기였다. 모차르트가 탄생한 짤츠부르크를 가는 길에 들른 호수 Mond See (月湖) 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에나 있어 보이는 그런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환상 (breathtakingly beautiful fantasy) 그 자체였다. 이런 나라에서 엊그제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버지가 딸을 통하여 손주들을 낳고 세상에서 격리시킬 목적으로 감금하여 20년 이상을 빛도 보지 못하게 했다니 인간이 어디까지 악할 수 있을까? 이것은 세기에 하나 정도 나올 만한 일이지만 전 세계인들이 경악했을 것이다. 교육적으로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한국인들이 충격을 받았던 버지니텍의 조승희도 어찌 보면 환경이 만들어낸, 미국의 사회가 배양한 증오와 충격의 결과였다. 따라서 조승희는 희생양 (scapegoat) 이지 결국 가해자라고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지 몰라도 미국이라는 배타적 사회가 조장한 증오의 산물이었다. 이렇듯 사회는 한 사람을 최악의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교육의 장인 것이다. 사회는 죄인을 만들어 내고 또 그들을 단죄하는 반복을 수천 년을 거쳐서 거듭하는 미련한 짓을, 비교육적인 역사를 써 내려왔다. 모두가 반성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못할게 없다는 풍조가 언제부터인가 생겨났다. 도덕의 가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돈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비극도 여기저기 일어난다. 한국에서는 전의 전쟁 (The War for Money) 이라는 영화가 나와 인기몰이를 한 적도 있다. 대통령도 돈 많이 벌게 해줄 사람을 찾게 되는 풍조가 생겨났다. 모든 포커스는 경제에 있다. 부동산 투기를 했건, 증권 조작을 했던, 세금 포탈을 했건 관계없다. 나 (myself) 라도 그런 위치에 있으면 그랬을 것이라고 두둔하기 까지 한다. 과연 이와 같은 어른들의 모습이 얼마나 교육적이 될 수 있을까? 사회가 교육의 장 (field) 인 것은 사회 속의 개인들, 특히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이 모범이 되어야 할 일이기에 그렇다. 국회의원들의 싸우는 모습, 어른들의 막가는 모습들은 아이들에게 못 보일 것만을 보이는 예가 된다.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은 충격과 실망, 그래서 잘못된 교육을 하는 일 밖에 없다. 어른들의 모범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는 이렇듯 교육의 장이면서 교육을 위해서 끊임없이 정화하고 반성하고 발전해야 하는 책임 있는 장소이다. 가정도 사회요, 학교도 사회고, 지역사회는 물론, 한 나라도 그리고 국제사회도 모든 인류에게 배움의 장소이자 배움을 주는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환경운동도 필요하고, 반 부패운동도 필요하며, 빈민구호운동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학생들은 인류를 사랑하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봉사를 원하며, 배움을 사회에서 실천하려는 모티브도 생겨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의 행동이 사회에 기여하고, 그래서 이와 같은 순 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질 때 우리의 자녀들과 학생들은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적극적인고 긍정적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아름답고 보답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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