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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교육 (Raising Children) 조주연 – 퀸즈칼리지 교장, 문학박사 (사회언어학)
자식교육에 대한 이론은 하도 많지만 누구도 이론대로 교육한다고 성공을 보장할 사람은 없다. 이론으로 설명해도, 행동으로 보여도, 매를 써서 훈육해도, 달콤한 말로 달래도,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외 한번 못한 어느 외딴 섬에서도 하버드를 들어가기도 하고, 과외와 외국유학으로 온통 정성과 돈을 들여도 안 되는 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필자도 자식교육이라면 자신이 없다. 자랑해서도 안 되지만 자랑할 일도 없고 자랑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속단할 수가 없기에 그렇다. 속 썩이던 자식이 나중에 잘 되기도 하고 자랑스럽던 자식이 나중에 애물단지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신앙이 필요하고 신앙으로 위로 받기도 한다.
교육학자 K. Levin 은 Behavior = F (P.E)라는 공식을 내놓은 바 있다. 여기서 F는 Function을 말하며, P는 Personality, 그리고 E는 Environment를 일컫는 말이다. 즉 자녀들의 행동은 그들의 타고난 개성과 그들이 처해있는 교육적인 환경이 어우러져서 나오는 결과물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식교육에는 환경론과 유전론이 있다. 그는 대표적인 환경론자로 꼽히지만 역시 타고난 개성을 관련시켰다. 우리가 흔히 부부간에 자식들 때문에 속상할 때 좋은 대화는 아니지만, 누구를 닮아서 저 애가 저럴까? 라는 자조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부모를 닮을 수도 있지만 양가의 조부모까지 증조부모까지 올라가보기도 한다. 아니면 하나님이 너의 심정이 바로 내 심정이라고 하시면서 너도 속 좀 썩어보라고 단련시키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다음에 얘기하는 의견은 물론 오랜 기간 자녀들을 교육시키면서 느껴온 필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결론이라고 이해해주기 바란다. 자녀들의 개성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교육적 환경은 가능하면 이상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모두의 문제로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1.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부모가 자식교육 때문에 열심히 살고 일하고 그리고 학문적으로도 열심히 하지만 정작 자녀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면 대화도 없고 버릇을 가르칠 시간도 없고 서로를 이해할 시간도 없고 가정이나 가문에 대한 전통을 얘기해줄 시간이 없다. 자식들도 자기들의 역사 (history) 를 알아야 목표가 서는데 그런 것들을 말해줄 기회가 없게 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부모들이 사업이나 학문적으로나 성공을 하려다 보면 바쁘게 되고 따라서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없어서 자식교육에 등한히 하게 되고 또 자식교육 때문에 이민 왔다가 자식교육을 망치는 수가 있다. 자식들은 부모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보면, 치열하게 경쟁하여 이겨내는 것을 보면 당연히 본을 보고 잘되겠지 하는데, 역시 이것도 경우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개인에 따라서 다르다 보니 할 놈은 안 시켜도 잘 한다 혹은 잘 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등의 유전론이 설득력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민사회에서 가장 흔한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2. 엄마가 원칙을 지키고 자식들에게 엄하게 하며 공부와 예의범절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고 아빠는 울타리처럼 이해하고 지원하며 보호하는 이런 체계가 그 반대보다 훨씬 더 자식교육에 성공할 확률이 많은 것 같다. 엄마가 융통성이 있고 그래서 자식이 공부를 잘 안 해도, 예의가 바르지 않아도, 자식들의 편에 서서 이해하듯 하고, 아빠가 엄하다 보니 일어날 수 있는 자식들의 이유 있는 반항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이해해주면 예외 없이 자식교육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다. 엄마는 착하고 아빠는 나쁘다는 이분법적 이론이 철없는 자식들에게는 고정될 수 있기에 그렇다. 이런 경우 대개는 엄마들이 모든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수도 있어서 자식들에게는 아빠가 필요 없는 존재로 까지 투영될 수 있기에 그렇다. 엄마가 하나만 알지 둘을 모르는 심각한 문제이다. 자식들의 문제를 이해해주던 엄마를 자식들은 성장하면서 쉽게 보기 시작한다. 이미 아빠에게서 통솔력을 빼앗은 다음에 엄마들이 나중에 자식들을 통솔하지 못하면 가정이 위아래도 없는 쑥대밭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이민 사회의 여기저기서 감지됨은 물론이다.
3. 엄마나 아빠, 양 부모님들의 자식교육에 대한 정책 (policy) 이 같아야 한다. 일찍이 루소는 절론(正論) 이라는 취지의 교육지침을 설파한 바 있다. 자식이 잘 못한 사안에 대하여 엄마는 그럴 수 있다고 용서하고 아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훈계를 한다면 아이들이 혼동을 하게 된다. 설사 부부간에 의견이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나로 교육방침을 정하여 부부가 올바른 논리로 자식들을 지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사실 위에서 두 번째 논의한 사항과 관계가 있지만, 이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정서순화 (emotional filtering) 의 단계에 있는 십대들에게는 요즘은 보호받고 자라서 대학생들의 20대에도 나타나지만, 부부간의 정론이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된다. 한마디로 원칙이 하나로 정하여진 자식교육이 자식들에게는 옳고 그름의 행동원칙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4. 자식들이 자라면서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혹은 어른에 대한 예절 면에서도 큰 실수를 했을 경우 즉각 엄하게 대처해야 한다. 자식이 얼마나 죄송한 심정이겠나 하고 잘 못에 대한 아픈 심정을 이해해 줄 때 미안해서라도 다시는 잘못을 안 하게 되면 좋은데 사실은 어린 나이라서 이래도 괜찮은 가보다라고 오해하는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자식을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그 자식에 대한 엄벌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처음 잘못을 덮어주다 보면 두 번, 세 번, 그리고 열 번, 아니 평생을 살아도 못 고치는 병으로 고착될 수 있게 된다. 그때에 가서 후회해봐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치 노래가사와 같이 말이다.
5. 자식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나중에 자식이 부모도 몰라보게 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부모가 어려서 집이 가난해서 갖고 싶은 것 못 가져 봤으니 사달라는 것 다 사주고, 먹고 싶은 것 다 사주고, 달라는 용돈을 다 주고, 공부를 안하고 빈둥빈둥 대도 이해해주고, 노력을 안하고 무엇을 가지려 할 때 어떻게라도 남에게 부탁해서라도 원칙을 버리고 갖게 해주고, 연령이 안되어 cell phone 을 구입할 수 없어도 부모이름으로 사주다 보면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원칙을 버리고 쉽게 얻으려 하고, 노력을 안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California주에 Monterey Peninsular라는 곳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17 mile 도로가 있다. 골퍼들에게는 잘 알려진 Pebble Beach Golf & Country Club이 있는 곳인데 관광객들이 주는 과자를 먹기 위해서 새들이 많이 몰려든다. 그러나 그곳에는 경고표지(warning sign) 가 있어서 새들에게 절대로 먹이를 주지 못하도록 관광객에게 요구하고 있다. 먹이를 주는 것은 새들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설명과 함께. 그 이유는 당연히 새들이 노력해서 먹이를 구해서 살면 건강하게 사는데, 관광객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면 건강에도 안 좋지만 노력을 안 하기에 나태해져서 비만해지고 쉽게 죽을 수가 있다는 숨겨진 뜻이 들어있다. 자식들에게도 같은 논리가 정확히 적용된다고 보시면 된다. 필요한 고생은 축복이 되고 지나친 사랑과 보호는 독약이 되는 것이다.
6.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다니든지 취직을 하든지 자기 일을 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는 30-40이 되도 직장을 갖지 않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아직도 부모에 의지하여 사는 실업자가 차고 넘치고 있다고 들었다. 지나친 부모님들의 보호가 원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내가 맞지 않는 직장이나 만족스럽지 않은 대우도 아무런 핑계가 안 된다. 원래부터 자기들에게 준비된 직장은 사장님의 아들이라도 없기에 그렇다. 뼈아픈 시행착오와 간단없는 훈련이 없이 어떻게 한번에 스타가 되겠는가? 한번에 큰 발자국을 만들려 하지 말고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가면서 마침내 큰 업적을 이루어내고 또 스타가 되는 것이 진정한 스타로 인정받는 것이다. 언제까지 어린 애 짓을 하면서 부모에 의존하고 부모의 한마디 한마디에 서운해 하며, 부모나 친지의 진정한 충고는 자기에 대한 비난으로 치부하고 어린아이에게 대하듯 위로나 하는 사람들의 달콤한 말만 좋아하는 못난 자식들로 남게 하겠는가? 이것은 어느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 많은 경우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미숙한 자식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게 설명하는 것이다.
7. 책임 (obligation) 과 순종 (obedience) 을 배우는 것이 자식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모든 일을 배우는 청년기까지에는 순종을 할 줄 알 때 절대로 비뚤어 질 수 없고, 사회에 나아가서 일을 할 때 책임을 다 한다면 직장생활이 원활해질 수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무슨 일이든 하다가 말고, 어려우면 피하고, 달콤하면 꾀임에 빠지고, 성질대로 행동할 때, 실패를 보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따를 줄을 모를 때 소위 왕 따를 당하게 되고 또래그룹에서도 외로워진다. 지도력 (leadership)은 따를 줄 아는 추종력 (fellowships)에서 온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확실한 사실이다. 나는 하지 않고 남 보고만 하라는 식은 사회적 적절성에서 성립이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부모님께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자녀들에게 주는 경우이다. 어른보고 자신은 청소하지 않으면서 왜 자식보고만 청소하라고 하느냐는 식으로 자식들이 말한다면 이는 지나친 적용이 된다. 부모님은 그만큼 자식들을 부양하느라고 일터에서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식들이 태어나서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갖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에 그렇다.
8. 마지막으로 자식들이 잘 되려면 책을 많이 읽게 해야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부모와의 대화를 통하여 교육될 수는 없다. 자식들이 항상 책을 가까이 하여 많은 간접적인 지식을 쌓는다면 목표도 없고 꿈도 없고 추진력도 없는 무기력한 자식들이 나올 수 없기에 그렇다. 책 속에는 길이 있다고 했던가? 책은 저자들의 인생이 들어있고, 철학이 들어있고, 지식이 들어 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있고 살아가면서 참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인생은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슬픔도 있고, 환희도 있고, 드릴도 있고, 갈등도 있고, 미움도 있고, 그리고 낭만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를 알게 되고, 노인과 어린이를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온갖 고뇌로 마침내 성숙됨도 안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독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대 명재인 것이다. 책이 많아서 망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자녀교육이라는 대신에 자식교육이라고 한 것은 좀더 부모님들에게 어필하려는 용어이다. 자녀(子女) 와 자식(子息) 은 물론 똑 같은 뜻으로 아들과 딸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자식교육이라는 용어가 애태우시는 부모님들의 마음에 더욱 와 닿을 것으로 보았다. 자식교육에 왕도는 없다. 그러나 필자가 교육현장을 통해 그리고 직간접적인 경험에 의해서 의견을 피력한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다만 의견으로만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옷깃을 여미고 자식교육의 의미를 자기 자신들을 통해서 재평가(revisit) 해 보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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